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 _


이 사람을 만나기 전, 꿈꿨던 사랑이 있다면,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이였으면했다. 

내 모습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고, 그걸 인정해 주는 사람.

물론 나 역시,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길 바랬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요즘들어 그런 나의 바람에 딱 맞는 사람을 만났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예를 들면, 나는 원래 잘 울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유학생활하면서 터득한 것 중 하나가 '혼자 울지말자' 였다.

울고나면 속이 시원해지지 않냐고들 하지만 그럴 수록 마음이 약해진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언젠가부터는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나는 일이 생겨도 참다보니, 그게 익숙해져서 나중에는 좀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해도 눈물이 쉽게 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람을 만나고부터 나는 참 잘 운다. 물론 이 사람 앞에서만.


어제 오후, 집에 들어오는 길에 그 전 날 있었던 일이 생각나서 괜히 서글퍼졌다.

수십장짜리 페이퍼를 몇 주 전에 제출 했었는데, 잘 했다고 하면서도 점수가 4점 여 있었다. 영어의 오류 때문이였다. 그런데 그 많은 페이지 중에서 딱 첫번째 페이지, 한 문단 안에서 4개의 문제점을 찾아내어 감점을 시켰다는 것이 이상했다. 게다가 그 페이퍼는 미국인 친구들 몇 명까지 동원해서 몇번을 다시 확인해서 고친 나름 완벽하다고 자부하며 제출 한 페이퍼였는데, 그렇게 어이없이 감점되고 보니 대체 왜 이런 류의 페이퍼에서 영어의 오류를 잡아내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오류가 첫페이지 두번째 문단에만 다 몰려있을 수 있어? 하는 의심까지 들었다. 

점수 확인 후 페이퍼를 다 가져가 버리는 바람에 정확히 어디가 잘 못 되었는지 아직 확인하지는 못했으니 섯부른 판단을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리고 없는 문제점을 만들어내지는 않았겠지만) 내가 외국인 학생이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서는 감점될 것이 없으니 굳이 찾아낸 것 아닐까하는 마음이 드는게 사실이였다. 그런 생각의 꼬리를 물고 가다보니 괜히 서글퍼지고 억울한 마음이 들어 꾹꾹 참다 남자친구와 화상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을 쏟아냈다. 최근들어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이 아닐까 싶을 만큼 펑펑 울고 또 울었다. 


조금 전, 아침에 일어나 다시 화상대화를 하며 '나는 원래 잘 안우는데 왜 오빠 만나고부터 자꾸 울지?' 라며 물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건 내가 그 만큼 당신이 편하고, 따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보니 난 이 사람에게만큼은 내 속마음도, 내 관심사도, 내 이야기들도 아무렇지 않게 다 보여주는 것 같다.

유학하면서 만난 친구들이나 동생들은 항상 나를 만나 본인들 이야기를 한참 털어 놓는 끝에, 

'... 참, 그러는 누나는 별 일 없어요?' 라던지, '언니는 힘든 일 없어요?' 라고 묻곤 한다. 때론 '왜 누나는 누나 이야길 잘 안해요?' 라고 물을 때도 있었다. 

사실 유학생들의 고민이야 다 고만고만 비슷할 뿐이고, 힘든 것도 비슷한데 말해뭘하나, 싶기도 하고 심지어 할 말이 없다는 생각까지 할 때가 많기에, 들어주는 편이였고 그런 그들의 이야기에 대해 대화할 뿐이였지, 내 이야기를 이것저것 꺼내어 신세 한탄을 하거나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일은 거의 없는 듯 하다. 


그런데 이 사람은 하루 두번 화상대화를 하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한다.

내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별 것 없는 연예인들 이야기까지, 각종 분야를 막론하고 이야기 하고 또 이야기 한다.

물론 그도 그런 편이고.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나를 어떤 negative 한 눈으로 바라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게 해 주는 사람.


오늘따라 그런 당신이 있어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2014. 11. 19.

by 한결같은 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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